FC 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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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C 바젤은 1893년 창단된 스위스의 축구 클럽으로, 스위스 슈퍼리그에서 20번의 최다 우승을 기록하며 스위스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팀으로 평가받는다. 1952-53 시즌에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장크트 야코프 파르크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며 다시 한번 강세를 보였다. 특히 2001-02 시즌 리그와 스위스컵을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고, 2002-0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2차 조별 리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FC 바젤은 13번의 스위스컵 우승과 1번의 스위스 리그컵 우승을 기록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등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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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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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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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네임 | 푸스발 클럽 바젤 1893 |
약칭 | FCB, 베비 (바젤 시민), 로트블라우 (빨강-파랑) |
창단일 | 1893년 11월 15일 |
경기장 | 장크트 야코프 파르크, 바젤 |
수용 능력 | 38,512 (국제 경기: 37,500) |
구단주 | FCB 홀딩 AG (다비드 데겐) |
회장 | 레토 바움가르트너 |
감독 | 파비오 첼레스티니 |
리그 | 스위스 슈퍼리그 |
시즌 | 2023-24 |
순위 | 스위스 슈퍼리그 8위 (12개 팀 중) |
웹사이트 | fcb.ch |
유니폼 정보 | |
홈 유니폼 | 상의: 빨간색, 어깨와 소매: 파란색 하의: 파란색 양말: 파란색 |
원정 유니폼 | 상의: 회색 하의: 회색 양말: 회색 |
써드 유니폼 | 상의: 흰색과 검은색 하의: 녹색 양말: 녹색 |
2. 역사
FC 바젤은 1893년에 창단되어 20회의 리그 우승을 포함하여 수많은 국내 타이틀을 획득한 스위스의 명문 축구 클럽이다. 1980년대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2000년대 이후 다시 스위스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부상했다. 특히 2009-10 시즌부터는 리그 8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크리스티안 에두아르도 히메네스, 훌리오 에르난 로시, 하칸 야킨 등을 앞세워 리버풀 FC를 꺾고 2차 리그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2차 리그에서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상대로 승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선전했다.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제르단 샤키리, 그라니트 자카를 중심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1승 1무로 제압하고 조별 리그를 통과하여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했지만, 홈경기에서는 발렌틴 슈토커의 결승골로 승리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바젤은 꾸준히 유럽 대항전에 참가하며 스위스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12-13, 2013-14 시즌에는 유로파리그 8강에 진출했고, 2019–20 UEFA 유로파 리그에서도 8강에 진출했다.[19]
2. 1. 초창기 (1893년 ~ 1965년)
FC 바젤은 1893년 11월 15일, 롤란드 게들너가 바젤러라는 지역 신문에 낸 광고를 통해 창단되었다.[4] 이 광고는 축구팀을 만들겠다는 내용과 함께,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수요일 오후 8시 15분에 슈마허너-춘프트 레스토랑으로 모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모임에는 주로 학계 출신인 11명의 남성이 참석했고, 이들이 FC 바젤을 창단했다. 창단 당시부터 클럽의 색상은 빨간색과 파란색이었다.바젤의 첫 경기는 1893년 11월 26일에 열렸는데, 두 개의 임시 FCB 팀 간의 내부 경기였다. 2주 후, FCB는 고등학교 체육 클럽 학생들로 구성된 팀과의 경기에서 첫 공식 경기를 치렀고, 2–0으로 승리했다. 바젤은 스위스 축구 협회가 조직한 세리에 A 두 번째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친선 경기만 치렀다. 세리에 A는 동부, 중부(FCB 포함), 서부의 세 지역 그룹으로 나뉘었고, 각 그룹의 우승팀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바젤은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고, 다음 시즌 챔피언십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1900–01 시즌 세리에 A는 동부 그룹과 서부 그룹으로 나뉘었다. 바젤은 취리히의 세 팀, 올드 보이즈, 포르투나 바젤과 함께 서부 그룹에 속했다. 바젤은 2승 2무 6패로 그룹에서 5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바젤은 초창기 축구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첫 번째 트로피를 획득하기까지는 40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줄라 케르테스는 1928년부터 1930년까지 팀을 지도했다.[4] 1932–33 시즌 초, 오스트리아 출신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 칼 쿠르츠가 클럽 감독으로 부임했다. 1932–33 나치오날리가의 그룹 1에는 8개의 팀이 있었다. 바젤은 14경기에서 7승을 거두며 리그 순위 2위로 시즌을 마쳤다. 두 그룹의 2위 팀 간의 플레이오프 경기는 슈타디온 랑크호프에서 열렸지만, 홈팀은 세르베트 FC 제네바에 3–4로 패했다. 스위스 컵에서 바젤은 결승에 진출하여 취리히의 하르트투름에서 경기를 치렀다. 바젤은 4-3으로 승리하여 라이벌이자 전년도 컵 보유팀인 그라스호퍼를 꺾고, 스위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컵 결승전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경기에서 사상 첫 국내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5시즌 동안 바젤은 나치오날리가의 중위권에 머물렀으며, 강등에 대한 걱정 없이 챔피언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1938–39 나치오날리가는 그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단 5승과 12패를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강등되었다.
1941–42 시즌은 강등 이후 바젤이 1부 리그(스위스 축구의 두 번째 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이었다. 오이겐 루프는 2년 연속 선수 겸 코치였다. 바젤은 동부 그룹 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서부 그룹 우승팀 베른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원정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고, 바젤은 홈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승격을 달성했다.
스위스 축구 최고 리그에서 불과 세 시즌 만에 바젤은 다시 강등되었지만, 1944–45 시즌에 즉시 재승격을 달성했다.
또 다른 오스트리아 출신 전 국가대표 선수인 안톤 샬이 클럽의 새로운 감독이 되었다. 바젤은 1946–47 시즌 나치오날리가 A를 26경기에서 12승을 거두며 4위로 마쳤고, 총 60골을 기록했다. 리그 득점왕은 트라우고트 오베러 (13골)와 르네 바더 (10골)였다. 바젤은 결승에서 로잔 스포르 (전년도 준우승팀)를 베른의 슈타디온 노이펠트에서 3–0으로 꺾고 두 번째 컵을 획득했다. 파울 슈퇴클린이 두 골을 넣었고, 바더가 나머지 한 골을 넣었다.
1952–53 시즌 초, 르네 바더는 이전 5년 동안 감독을 맡았던 에른스트 후프슈미드로부터 클럽 감독직을 물려받았다. 바더는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고, 빌리 듀르가 그의 보조였다. 바더가 경기를 할 때는 듀르가 측면에서 지휘했다. 바젤은 1953년에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BSC 영 보이즈보다 4점 앞서 시즌을 마쳤다. 바젤은 26경기 중 17경기에서 승리했고, 단 한 번만 패했으며, 72골을 넣고 38골을 실점했다. 요제프 휘기가 팀의 리그 최고 득점자였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감독인 이르지 소보트카가 이 당시 클럽 감독이었으며, 전년도에 예노 빈체로부터 직책을 물려받았다. 바젤은 챔피언십에서 6위를 기록했다. 하인츠 블루머가 이 시즌 16골로 바젤의 최고 득점자였고, 칼 오더마트가 14골로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방크도르프 스타디움은 1963년 4월 15일에 스위스 컵 결승전을 개최했고, 바젤은 유력한 우승 후보인 그라스호퍼와 경기를 치렀다. 하인츠 블루머와 오토 루드비히의 후반 두 골로 바젤은 2-0으로 승리하며 역사상 세 번째 컵 우승을 차지했다. 페터 퓌리는 결승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출전했으나, 결승전은 질병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1964년 12월 26일, FCB는 그라스호퍼 취리히와 스위스 컵 8강전을 치렀다. 연장전에서 3–1로 승리했다. 이 경기는 당시 인기 있었던 바젤의 주장 한스 베버의 마지막 경기가 될 예정이었다. 그는 7주 후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4] 1949년 첫 출전부터 1965년 2월 사망할 때까지 그는 바젤에서 281경기에 출전하여 48골을 기록했다.
2. 2. 전성기와 몰락 (1966년 ~ 1999년)
1966-67 시즌, 헬무트 벤트하우스 감독 겸 선수의 지휘 아래 바젤은 리그와 스위스 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며 더블을 기록했다.[4] 이후 1968-69, 1969-70, 1971-72, 1972-73 시즌에 리그 우승을 추가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1973-74 시즌에는 테오필로 쿠비야스를 영입하여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1977년 리그 우승 이후, 1980년 우승을 제외하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 부진의 늪에 빠졌다. 1994-95 시즌, 클로드 앙드레이 감독의 지휘 아래 1부 리그로 복귀했으나, 이후에도 중위권을 맴돌았다.
2. 3. 영광의 귀환 (2000년 ~ 현재)
장크트 야코프 파르크가 2001년 3월 15일에 개장했으며, FC 바젤은 2000-01 시즌을 리그 4위로 마쳤다. 2001-02 시즌, 크리스티안 그로스 감독의 지휘 아래 22년 만에 리그 우승과 스위스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며 더블을 기록했다.[7] 무라트 야킨의 페널티킥으로 스위스 컵에서 연장전 끝에 그라스호퍼를 꺾었다.2002-03 시즌에 바젤은 개편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두 번째 스위스 팀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속한 2차 조별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골득실차로 탈락했다. 국내 대회에서는 스위스 슈퍼 리그 2위, 스위스 컵 우승(결승에서 뇌샤텔 크사막스를 6-0으로 격파)을 차지했다.
2003-04 시즌 바젤은 13연승을 기록하며 스위스 챔피언십에서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4-05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에게 패해 UEFA 컵으로 떨어졌고, UEFA컵 32강에서 릴에게 패했다. 국내 리그에서는 10점 차로 우승했다.
2005-06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베르더 브레멘에게 탈락했고, UEFA 컵 8강에서 미들즈브러에게 탈락했다. 2006년 2월 26일, 바젤은 홈 52경기 무패 기록을 깨고 59경기까지 연장했으나, 시즌 마지막 날 율리안 필리페스쿠의 골로 FC 취리히가 2-1로 승리하면서 1980-81 시즌 이후 취리히의 첫 번째 전국 챔피언십 우승을 저지했다. 이로 인해 경기 후 라이벌 서포터 간의 폭동이 발생했다.
2006-07 시즌 바젤은 리그에서 취리히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FC 루체른을 1-0으로 꺾고 스위스 컵에서 8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6–07 UEFA 컵 조별 예선에서 블랙번 로버스, 낭시, 페예노르트, 비스와 크라쿠프와 함께 편성되어 최하위로 탈락했다.
바젤은 2007-08 UEFA 컵 32강에서 스포르팅 CP에게 패했다. 2008년 4월 6일 AC 벨린초나를 4-1로 꺾고 스위스 컵 우승, 5월 10일 영 보이즈를 2-0으로 꺾고 스위스 슈퍼 리그에서 우승했다.
2008–09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바르셀로나, 샤흐타르 도네츠크, 스포르팅 CP와 함께 C조에 편성되어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9년 5월 27일, 크리스티안 그로스가 10년간의 FC 바젤 감독직에서 해고되었다.
2009-10 시즌, 토르스텐 핑크가 2009년 6월 9일 바젤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7] 2009–10 UEFA 유로파 리그에서 E조 3위로 마쳤다. 국내에서는 스타드 드 스위스에서 열린 최종전에서 영 보이즈를 꺾고 리그 우승, 2009–10 스위스 컵 결승전에서 FC 로잔 스포르를 6-0으로 꺾고 컵 우승을 달성했다.
20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 E조로 진출했다. 2011년 10월 13일, 토르스텐 핑크는 함부르크 SV로 이적했고, 그의 어시스턴트 보겔이 임시 감독으로 계약했다.[8] 2011년 12월 12일, 보겔이 정식 감독으로 계약했다.[9]
챔피언스 리그에서 2011년 12월 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2012년 2월 22일, 16강 1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1-0으로 꺾었지만, 2차전에서 7-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2012년 10월 15일, 하이코 보겔 감독이 해고되고, 무라트 야킨이 그를 대신했다.[10] 2012-13 시즌, 바젤은 그라스호퍼를 3점 차로 앞서며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11]
2012–13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 G조 2위로 32강에 진출,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합계 3-1),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합계 2-1)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나,[12] 준결승에서 첼시에게 패했다.
2013–14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바젤은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첼시를 상대로 2-1 원정 승리, 장크트 야코프 파르크에서 1-0 홈 승리를 거두었다. 2013-14 유로파 리그 8강에서 발렌시아에게 패했다.[13]
2014년 5월 28일, 파울루 소자가 새 감독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다.[14] 리그 6연패를 달성했고, 스위스 컵에서는 결승에서 FC 시옹에게 0-3으로 패하며 준우승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를 통과하여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12월 9일 리버풀과 경기에서 라자르 마르코비치가 퇴장당했다.[15] 이후 포르투에게 16강에서 패했다.
2015-16 시즌 전 파울루 소자는 피오렌티나로 떠났고, 6월 18일 우르스 피셔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레흐 포즈난과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 마카비 텔아비브에게 패하며 2015–16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로 떨어졌다. 2015–16 UEFA 유로파 리그 조별리그 I조 1위로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 생테티엔과 합계 4-4 무승부 후 원정 다득점 규칙에 따라 진출했으나, 세비야에게 16강에서 3-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2016년 4월 30일, 바젤은 장크트 야코프 파크에서 FC 시옹을 2-1로 꺾고 7번째 연속 스위스 전국 선수권 대회 우승을 확정했다.[16]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아스널, 루도고레츠 라즈그라드와 대결하여 최하위로 탈락했다.
바젤은 8연속 스위스 슈퍼 리그 우승과 통산 20번째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다.[17] 스위스 컵에서 12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여섯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18]
2017-18 시즌에는 라파엘 비키가 새로운 1군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18년, BSC 영 보이즈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바젤의 8년 연속 우승이 중단되었다. 바젤은 69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후 바젤은 2012-13, 2013-14에 이어 세 번째로 2019–20 UEFA 유로파 리그 8강에 진출했다.[19]
3. 경기장
FC 바젤은 37,500석 규모의 장크트 야코프 파르크를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22] UEFA는 이 경기장에 4성 등급을 부여했는데, 이는 해당 규모 경기장에 주어질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다.
장크트 야코프 파크는 2001년에 개장했으며, 원래 최대 수용 인원은 33,433명이었다. UEFA 유로 2008을 스위스가 공동 개최하면서 새로운 스탠드(G 구역)를 추가해 42,500석으로 확장되었다. 유로 2008 이후에는 좌석 수를 줄이고 좌석 간 간격을 넓혀 수용 인원을 37,500석으로 줄였다.[23] 경기장은 팬들에게 "요겔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레스토랑 UNO와 Hattrick's Sports Bar, 2001년 11월 1일에 개장한 쇼핑 센터를 갖추고 있다. 또한 680대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 공간과 자체 기차역도 있다.
장크트 야코프 파크는 유로 2008에서 스위스와 체코의 개막전을 포함하여 6경기를 개최했으며, 독일과 터키의 준결승전도 열렸다. 이 경기장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반투명 외피로, 다양한 색상으로 조명하여 인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효과는 3년 후 바이에른 뮌헨의 새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모방되었다.
장크트 야코프 파크가 건설되기 전, FC 바젤은 란트호프 (클라인바젤 지구)와 1954년 FIFA 월드컵 이후 현재 경기장과 같은 부지에 건설된 장크트 야코프 경기장에서 홈 경기를 치렀다. 장크트 야코프 파크 건설 기간에는 슈첸마테 경기장에서 홈 경기가 진행되었다.
2016년에는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이 장크트 야코프 파크에서 열렸다.[24]
4. 라이벌
바젤 시와 취리히 시는 오랜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FC 바젤의 가장 전통적이고 치열한 라이벌은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와 FC 취리히이다.[1] FC 취리히와 바젤의 라이벌 관계는 2000년대 이후 취리히가 바젤을 상대로 근소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더욱 격화되었다.[1] 양측 서포터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문제를 일으켰으며, 2006년 5월에는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1]
바젤은 2003-04 시즌과 2004-05 시즌에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2005-06 시즌 마지막 날 홈에서 취리히를 상대로 승리하거나 비기기만 해도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1] 그러나 취리히는 율리안 필리페스쿠의 후반 막판 골로 앞서 나갔고, 결국 경기에서 승리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1] 경기가 끝나자 양 팀의 선수들과 팬들은 경기장과 관중석에서 싸움을 시작했다.[1] 이 사건은 FC 취리히와 FC 바젤 팬들 사이의 증오와 앙심을 더욱 부추겼다.[1] 그라스호퍼와의 라이벌 관계와 FC 취리히와의 라이벌 관계 중 어느 쪽이 더 큰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이는 대개 이 팀들의 성공에 달려 있다.[1]
5. 서포터
FC 바젤은 크고 충성스러운 지역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열정적인 클럽 축구 팬에 대한 여론 조사가 실시될 때, FC 바젤의 팬들은 세계 최고 200위 안에, 많으면 100위 안에 들며, 매 홈 경기마다 약 30,000명의 팬들이 참석하여 스위스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높은 평균 관람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20] 새로운 확장이 건설되면서 그 숫자는 약 40,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 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국제 경기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세계적인 테니스 전설 로저 페더러는 이 클럽의 가장 유명한 팬 중 한 명이다.
2010년 11월, FC 바젤의 서포터들은 수백 개의 테니스 공을 경기장에 던져 FC 루체른과의 경기를 중단시켰다. 이는 TV 일정에 맞춰 테니스 토너먼트를 수용하기 위해 킥오프 시간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21]
6. 유니폼
FC 바젤의 전통적인 유니폼은 빨간색과 파란색 셔츠이며, 이는 창립자 중 일부가 빨간색과 파란색을 사용했던 "바젤 루더-클럽(Basler Ruder-Club)"의 회원이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FC 바젤의 유니폼은 금색 트리밍이 있는 파란색 반바지와 빨간색 트리밍이 있는 파란색 양말로 완성된다. "''RotBlau''"라는 별명은 스위스 독일어와 독일어로 "빨간색과 파란색"을 의미한다.[25] 원정 유니폼은 가운데에 두 개의 줄무늬가 있는 흰색이며, 왼쪽은 빨간색, 오른쪽은 파란색이다.
FC 바젤의 유니폼은 이전에 나이키에서 제작했지만, 2012년 여름에 아디다스와 2017년까지 유니폼을 제작하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메인 스폰서는 바젤시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 회사인 노바티스이다. 저지 안쪽 태그에는 "Rot isch unseri Liebi, Blau die ewigi Treui, Basel unseri Stadt."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빨간색은 우리의 사랑, 파란색은 영원한 충성, 바젤은 우리의 도시"로 번역된다.
전설에 따르면, FC 바르셀로나의 "Blaugrana" 색상은 FC 바젤의 Rotblau 색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25] 그러나 오늘날 조안 감페르 가문의 설명에 따르면, FC 바르셀로나는 리버풀 근처의 머천트 테일러스 학교(Merchant Taylors' Boys' School, Crosby) 럭비 팀에서 색상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한다.[26]
2008-09 시즌을 위해 바젤은 셔츠를 전통적인 바르셀로나 셔츠(빨간색과 파란색 세로 줄무늬)와 유사하게 변경했다.
7. 엠블럼
FC 바젤의 현재 엠블럼은 방패 모양으로, 왼쪽 절반은 빨간색, 오른쪽 절반은 파란색이며, 금색으로 윤곽이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금색 글자로 "FCB"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풋볼 클럽 바젤(Football Club Basel)" 또는 "푸스발클럽 바젤(Fussballclub Basel)"을 의미한다.
이 엠블럼은 FC 바르셀로나의 엠블럼과 매우 유사하다. FC 바르셀로나의 창립자가 한때 바젤의 주장이었으며 바젤의 로고를 바르셀로나의 로고에 재도입했다는 이론이 있을 정도이다. 두 로고 모두 방패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으며, FCB 약어와 금색으로 윤곽이 그려진 빨간색과 파란색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바젤 로고의 왼쪽에 있는 축구공은 바르셀로나 로고 중앙 하단에 있는 축구공과 모양, 유형, 색상이 동일하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바젤이 바르셀로나 창립에 영감을 주었다고 추정한다.
8. 소유 구조
FC 바젤의 소유 구조는 FC 바젤 홀딩 AG(FC Basel Holding AG)와 FC 바젤 1893 클럽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FC 바젤 홀딩 AG는 FC 바젤 1893 AG의 지분 75%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25%는 FC 바젤 1893 클럽 회원들이 소유하고 있다. 2021년, 다비드 데겐이 FC 바젤 홀딩 AG의 지분 92%를 인수하며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다.
9. 선수
FC 바젤 선수단은 현재 선수 명단, 임대 선수 명단, 그리고 영구 결번으로 구성된다.[46]
FC 바젤 소속으로 활동했거나 현재 활동 중인 선수로는 툴란트 샤카, 벤자민 코롤리, 이매뉴얼 에시암, 조나스 아제테이, 핀 반 브레멘, 모리스 말론, 아드리아노 오녜그불레, 안톤 카데, 아드리안 레온 바리시치, 세르히오 로페스, 모하메드 드래거, 아르노 코마스, 후안 가우토, 유수프 데미르, 가브리엘 시구아, 레나토 베이가, 장케뱅 오귀스탱, 티에르노 바리, 위고 보겔 등이 있다.[46]
9. 1. 현재 선수 명단
2024년 5월 15일 기준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46]포지션 | 국가 | 이름 | 기타 |
---|---|---|---|
GK | 마르빈 히츠 | ||
DF | 니콜라스 부이요 | ||
DF | 아르나우 코마스 | ||
DF | 모하메드 드래거 | ||
MF | 벤자민 콜롤리 | ||
MF | 로마리오 바로 | 포르투에서 임대 | |
FW | 케빈 카를로스 | ||
FW | 제르단 샤키리 | ||
FW | 베니 트라오레 | ||
GK | 미르코 살비 | ||
FW | 브래들리 핑크 | ||
DF | 조 멘데스 | 브라가에서 임대 | |
MF | 엠마누엘 에시암 | ||
FW | 마린 쇼티첵 | ||
MF | 가브리엘 시구아 | ||
MF | 레오 르로이 | ||
FW | 알비안 아예티 | ||
DF | 핀 반 브리먼 | ||
DF | 아드리안 레온 바리시치 | ||
DF | 케빈 뤼에그 | ||
DF | 위고 보겔 | ||
DF | 무사 시세 | ||
MF | 안톤 카데 | ||
MF | 도미니크 슈미트 | 주장 | |
DF | 요나스 아제티 | ||
MF | 타울란트 자카 | 부주장 | |
FW | 로메오 베네이 | ||
MF | 레온 아브둘라후 | ||
MF | 알레 J. 제 | ||
DF | 마빈 아카호멘 |
9. 2. 임대 선수 명단
포지션 | 국가 | 이름 | 임대 구단 및 기간 |
---|---|---|---|
GK | 팀 슈피허 | 뉘옹 (2025년 6월 30일까지) | |
MF | 조나단 두바신 | 스포르팅 히혼 (2025년 6월 30일까지) | |
MF | 디온 카추리 | 이베르동 스포르 (2025년 6월 30일까지) | |
MF | 아드리아노 오니예불레 | 샤프하우젠 (2025년 6월 30일까지) | |
FW | 모리스 말론 | 오스트리아 빈 (2025년 6월 30일까지) | |
FW | 조르제 요바노비치 | 파르티잔 (2025년 6월 30일까지) | |
FW | 후안 가우토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25년 6월 30일까지) | |
FW | 안드린 훈지커 | 이베르동 스포르 (2025년 6월 30일까지) | |
FW | 악셀 카욤보 | 스타드 로잔-우시 (2025년 6월 30일까지) |
9. 3. 영구 결번
10. 역대 성적
FC 바젤은 스위스 슈퍼리그에서 20회, 스위스컵에서 13회, 스위스 리그컵에서 1회 우승하는 등 국내 대회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코파 델레 알피에서 3회 우승을 기록했다.
국제 대회에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4번(2002-03, 2011-12, 2014-15, 2017-18), UEFA 유로파 리그 준결승(2012-13),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준결승(2022-23)에 진출했다. 특히,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리버풀을 꺾고 2차 조별 리그에 진출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무승부를 기록하고, 유벤투스를 상대로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하며 조별 리그를 통과, 16강에 진출하여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1966-67 시즌, 선수 겸 감독이었던 헬무트 벤트하우스는 바젤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4개 팀이 참가한 리그에서 바젤은 FC 취리히를 단 1점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26경기에서 16승 8무 2패, 60득점 20실점을 기록했으며, 로베르토 프리게리오가 16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 헬무트 하우저가 14골로 그 뒤를 이었다.[1] 같은 시즌 스위스 컵 결승에서는 로잔-스포르를 상대했는데, 헬무트 하우저의 페널티킥 결승골 이후 로잔 선수들이 경기 재개를 거부하며 경기장에 드러눕는 항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고, 바젤은 3-0 몰수승으로 컵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첫 더블을 달성했다.[1]
이후 바젤은 1967-68 유러피언컵에 처음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아카데미스크 볼드클럽에 패했다.[1] 1968-69 시즌에는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69-70 시즌에도 로잔-스포르를 1점 차로 따돌리고 네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1] 1970-71 유러피언컵에서는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아약스에 패했다.[1]
1971-72 시즌은 헬무트 벤트하우스가 선수로 활동한 마지막 시즌으로, 바젤은 취리히를 4점 차로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72-73 시즌에도 리그 17승을 거두며 그라스호퍼를 4점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옷마어 히츠펠트는 18골로 리그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같은 해, 1972 스위스 리그컵 결승에서 FC 빈터투어를 4-1로 꺾고 우승했다.[1]
1973-74 시즌에는 테오필로 쿠비야스를 영입하여 유러피언컵 8강에 진출했지만, 셀틱에게 아쉽게 패했다. 리그에서는 5위에 그쳤고, 옷마어 히츠펠트는 19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였다.[1] 1975년 스위스 컵에서 우승하며 1975-76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에 진출했다.[1]
1977 시즌, 바젤은 플레이오프에서 세르베트 FC를 꺾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80 시즌에도 플레이오프를 통해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1982년 헬무트 벤트하우스 감독이 떠난 후 1987-88 시즌에 나치오날리가 B로 강등되었다.[1]
이후 여러 감독을 거쳐 클로드 안드레이 감독 하에 1994-95 시즌 나치오날리가 A로 복귀했다. 카를 엥겔, 요르크 베르거 감독을 거쳐 크리스티안 그로스 감독 부임 후, 재정적 지원과 함께 바젤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1] 장크트 야코프 파르크가 2001년 개장했고, 바젤은 2001-02 시즌 22년 만에 리그 우승과 스위스 컵 우승 더블을 달성했다.[1]
2002-03 시즌, 바젤은 개편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두 번째 스위스 팀이 되었다. 2차 조별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속한 조에서 골득실차로 탈락했다. 국내에서는 리그 2위, 스위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1]
2003-04 시즌, 바젤은 13연승으로 시작하여 시즌 내내 리그 선두를 유지하며 10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1] 2004-05 시즌에도 리그 10점 차 우승을 차지했고, UEFA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인테르에 패해 UEFA 컵으로 떨어졌지만, 32강까지 진출했다.[1]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서 베르더 브레멘에 패했지만, UEFA 컵 8강까지 진출했다. 리그에서는 FC 취리히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홈 59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으나 시즌 마지막 날 취리히에게 패하며 기록이 중단되었다. 이 경기는 라이벌 서포터 간의 폭동으로 이어졌다.[1]
2006-07 시즌, 바젤은 리그 2위, 스위스 컵 8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1] 이후 UEFA 컵에서 선전하며 32강에 진출, 스포르팅 CP에 패했다.[1] 2008년, 바젤은 스위스 컵과 리그에서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1]
2008-09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 진출했지만, 바르셀로나, 샤흐타르 도네츠크, 스포르팅 CP에 밀려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3위를 차지했고, 크리스티안 그로스 감독이 10년 만에 해고되었다.[1]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부임한 2009-10 시즌, 바젤은 리그와 컵에서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마르코 슈트렐러는 21골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1] 2010-11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 진출했다.[1]
2011년,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함부르크 SV로 떠나고 하이코 보겔이 임시 감독을 맡았다. 바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꺾고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진출했고, 하이코 보겔이 정식 감독으로 계약했다.[8][9] 16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홈에서 1-0 승리를 거뒀지만, 원정에서 7-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1]
2012년, 하이코 보겔 감독이 해고되고 무라트 야킨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바젤은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10][11]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UEFA 유로파 리그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첼시에 패했다.[12]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첼시를 상대로 2승을 거뒀지만, 조 3위로 UEFA 유로파 리그 8강에 진출, 발렌시아에 패했다.[13]
2014년, 파울루 소자 감독이 부임하고, 리그 6연패를 달성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진출, 포르투에 패했다.[14][15]
우르스 피셔 감독이 부임한 2015-16 시즌,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UEFA 유로파 리그 16강에 진출, 세비야에 패했다. 리그에서는 7연패를 달성했다.[16]
2016-17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리그 8연패와 스위스 컵 12번째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다.[17][18]
2017-18 시즌, 라파엘 비키 감독이 부임했고, 리그 2위를 차지했다. 이후 바젤은 2019–20 UEFA 유로파 리그 8강에 진출했다.[19]
최다 리그 출장 기록은 마시모 체카로니의 398경기, 최다 리그 득점 기록은 요제프 휘기의 245골이다.
10. 1. 국내 대회
대회 | 우승 횟수 | 우승 연도 |
---|---|---|
스위스 슈퍼리그 | 20 | 1952–53, 1966–67, 1968–69, 1969–70, 1971–72, 1972–73, 1976–77, 1979–80, 2001–02, 2003–04, 2004–05, 2007–08, 2009–10, 2010-11, 2011-12,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
스위스컵 | 13 | 1932–33, 1946–47, 1962–63, 1966–67, 1974–75, 2001–02, 2002–03, 2006–07, 2007–08, 2009–10, 2011–12, 2016–17, 2018-19 |
스위스 리그컵 | 1 | 1972 |
10. 2. 국제 대회
대회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UEFA 챔피언스 리그 / 유러피언컵 | 122 | 49 | 25 | 48 | 177 | 196 | -19 | 40.2% |
UEFA 유로파 리그 / UEFA 컵 | 110 | 50 | 24 | 36 | 184 | 138 | +46 | 45.5% |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 34 | 18 | 8 | 8 | 62 | 40 | +22 | 52.9% |
UEFA 컵 위너스컵 /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 4 | 0 | 1 | 3 | 3 | 13 | -10 | 0.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10 | 1 | 1 | 8 | 3 | 13 | -10 | 10.0% |
총합 | 280 | 118 | 59 | 103 | 429 | 400 | +29 | 42.1% |
- 코파 델레 알피: 우승 3회 (1969, 1970, 1981)
-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002-03, 2011-12, 2014-15, 2017-18)
- UEFA 유로파 리그: 준결승 (2012-13)
-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준결승 (2022-23)
- 최대 유럽 홈 경기 승리: 바젤 7–0 폴고레 (2000년 8월 24일, UEFA컵 예선 2차전)
- 최대 유럽 원정 경기 승리: 프람 0–5 바젤 (1973년 9월 18일, 유러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 1라운드 1차전)
- 최대 유럽 홈 경기 패배: 바젤 0–5 바르셀로나 (2008년 10월 22일, UEFA 챔피언스 리그)
- 최대 유럽 원정 경기 패배: 바이에른 뮌헨 7–0 바젤 (2012년 3월 13일, UEFA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1999-2000 시즌 이후 매 시즌 UEFA 주최 대회에 출전하고 있으며, 스위스 축구 클럽으로는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진출했다.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크리스티안 에두아르도 히메네스, 훌리오 에르난 로시, 하칸 야킨 등을 보유한 바젤은 1차 리그에서 리버풀 FC를 꺾고 2차 리그에 진출, 격전지였던 2차 리그에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상대로 승리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무승부를 기록하고, 유벤투스 FC에 승리했다.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제르단 샤키리와 그라니트 자카를 보유한 바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하며 조별 리그를 통과,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패했지만, 홈 경기에서는 발렌틴 슈토커의 결승골로 승리했다.
이후 바젤은 2012–13, 2013–14에 이어 세 번째로 2019–20 UEFA 유로파 리그 8강에 진출했다.[19]
11. 역대 감독
감독 | 임기 |
---|---|
페르낭 자카르 | 1937~1939 |
안톤 샬 | 1946~1947 |
에른스트 후프슈미트 | 1947~1952 |
르네 바더 | 1952~1955 |
벨라 샤로시 | 1955~1957 |
르네 바더 | 1958~1959 |
제뇌 빈체 | 1959~1961 |
이르지 소보트카 | 1961~1965 |
라이너 올하우저 | 1982~1983 |
크리스티안 그로스 | 1999~2009 |
토르스텐 핑크 | 2009~2011 |
무라트 야킨 | 2012~2014 |
파울루 소자 | 2014~2015 |
우르스 피셔 | 2015~2017 |
라파엘 비키 | 2017~2018 |
알렉산더 프라이 (대행) | 2018 |
마르셀 콜러 | 2018 |
치리아코 스포르차 | 2020~2021 |
기예르모 아바스칼 | 2022 |
알렉산더 프라이 | 2022~2023 |
티모 슐츠 | 2023 |
파비오 첼레스티니 | 2023 ~ |
12. 유명 선수
1983–1987
1989–1991
2007–2015
1955–1959
2009–2013
1925–1936
2018–2022